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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범죄인 신창원 출소 언제인가? 신창원은 누구인가?

by 핸드드립 2020. 10. 10.



1997년을 공포에 떨리게 만들었던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이 출소한다. 


그는 누구인가?




이름 : 신창원

나이 : 1967년 5월 28일생 (53세)

체격 : 174cm, 73kg

혈핵형 : O형

죄명 : 절도, 강도치사



신창원의 성장기




생후 신창원은 극심한 가난을 겪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간암으로 돌아가시는 등 매우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그를 사랑했더라면 여기까지 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를 속인다고 신창원을 때렸고, 나중에 계모가 들어왔다.

새 엄마는 신창원의 동생이 아파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이 학교는 반 친구들로부터 왕따와 괴롭힘이 잦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초등학교부터 가출을 시작해 중학교에 입학한 지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했다.


귀여운 외모에 장난끼 많을 것 같았던 신창원의 어렸을 적 모습


범죄의 시작



중학교에 입학해 동급생들로부터 잦은 왕따와 괴롭힘에 시달린 그는 불과 3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1982년 절도 혐의로 소년원에 들어갔다.

 신 씨의 친아버지 신흥선 씨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신 씨를 구속하라고 계속 요구했다. 

아들 신창원이 소년원에 가서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반항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신씨는 출소 후 서울로 올라갔다. 1983년 식당 배달원으로 일하면서 훔친 죄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1989년 3월 28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 자택에서 강도행각을 벌이다 공범 1명이 정씨를 살해하고 살해한 뒤 1989년 9월 29일 청량리의 한 커피숍에서 공범 3명이 구속됐다. 

체포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청송교도소에 수감됐다가 1994년 부산교도소로 이송됐다.



탈옥의 흔적, 그리고 검거



그는 1997년 1월 20일 부산교도소에서 화장실 쇠막대를 톱날로 잘라 탈출했다. 이후 2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9억8000여만 원을 가로챘고, 훔친 돈으로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꼬드겨 함께 생활하며 은신처로 삼았다. 

그러나 함께 살 곳이 없을 때는 동굴에 살면서 홀더로 살았다. 또 신 씨는 경찰에게 쫓기다가 원종열 경관에게 총에 맞아 부상하는 등 초인적인 체력을 과시했다. 

경찰은 신 씨의 체포를 위해 헬기를 띄우고 전경들을 동원했지만 속수무책으로 13차례나 놓치는 일이 반복돼 많은 경찰관들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1999년 7월 16일 신창원은 자신이 숨어 있던 전남 순천시 자신의 아파트에서 가스레인지 수리를 의뢰받은 경찰관에게 체포돼 2년 6개월의 징역형 휴식이 종료됐다. 

이후 제63대 광주동부경찰서장에 김진희 당시 수사과장이 임명됐고, 신고된 수리공은 경찰에 특별채용됐다. 국내 최초의 여성 경찰로 강력계장에 임명된 박미옥 경위도 특감반원으로 활동했다.



수감중 자살 기도


2011년 8월 18일 신 씨는 감방에서 자살을 기도해 중태에 빠졌다. 현재 복역 중인 경북 북부 1호 교도소에 따르면 지난 7월 부친 사망에 따른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특이한 학대와 추측이 없었다. 

이에 따라 신창원은 지난해 6월 흉악범들만 수용하던 중경호시설인 제2교도소에서 제1교도소로 이송된 지 1년여 만에 자살시도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다. 

제2형무소는 국내 유일의 중경호시설로 아동 성폭행범 등 특수관리가 필요한 강력범죄자를 별도로 수용하고 있다. 당시 신창원은 1호 감옥에서 모범적인 옥살이를 하기 위해 일반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신창원 도피일지



<교도소 후 탈출>



- 1997.1.20 부산형무소 감방, 화장실, 환풍구 쇠창살 절단 및 탈옥



- 법무부는 1997년 1월 23일 신창원에 상금 5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 1997.4 전북 김제에서 택시가 추락했지만 도난 운전 면허증으로 검거를 면한 경우



- 1997.8.8.8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호아파트에서 신그랜더 승용차 훔치기



- 1997.9.28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삼성리 한영빌라로 은신처 이전



- 1997.10 동거녀 전모씨 신창원씨에게 신고



- 1997.10.18 충남 천안시 목천면 H 별장에서 원종렬 경위와 싸우다 가스총 2발(첫 대면)을 맞고 도주했다.



- 1997.12.20 경기 평택시 장애인 숙박시설 '요한의 집'과 두 소년소녀에게 180만원 기부



- 1997.12.30 경기 평택시 원종렬, 김구현 장교와 격투



* 가스총에 맞은 뒤 왼쪽 손목이 부러진 채 도망쳐 포상금 1000만원(두 번째 대면)으로 인상



- 1998.1.11 충남 천안시 목천면 태화산 자락에서 김병록 하사, 최갑철 하사와 싸운 뒤 도주



* 경찰관 2명에 대한 정직 3개월, 전 경기경찰청장 직위해제, 김영태 평택경찰서장 등 7명 징계위원회 회부(세 번째 대면)



- 1998.3.6 전북 김제시 금구면 금천저수지 경찰 검문소서 도주



* 김제 경찰서장 교체, 경찰서 수사과장 사퇴(4차 대면)



- 1998.5.18 경북 성주 순찰차 탈출 경북 성주의 경찰서장을 교체하면서 경찰관 2명의 전보가 날아들었다.



- 1998.7.16 서울 강남구 포이동 주택가에서 경찰관의 총을 훔치고 귀와 팔을 물어뜯은 뒤 도주



* 윤종옥 서울수서경찰서장, 김광식 서울지방경찰청장 경고(5차 대면)



- 1998.7.21 포상금 5000만원으로 인상



- 1999.6.1 충남 천안의 한 커피전문점 업주 발견 후 가출



- 1999.7.16 전남 순천시 금당 대주아파트에서 검거



- 2000.8 종신형



- 2011년 8월 18일 - 부친 사망 소식에 고무장갑을 낀 채 자살 시도



- 2020.5 20년간 감시한 CCTV 제거



탈출 후 총 잡힐때 까지의 시간


.그는 도주하는 동안 108건의 강도 및 절도 행각을 벌여 9억8000여만원을 빼앗았다. 이 돈은 다방, 가정부 등 유흥업소 종사자들을 끌어들여 동거의 은신처를 만드는 데 쓰였다.


신 씨가 도주하는 과정에서 경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주민 신고도 무시하는 등 고질적인 허점이 드러났고, 이들을 검거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일선 경찰관들이 대거 물러났다.

도주하는 동안 그는 경찰관과 총 5차례 대치하다 붙잡히지 않고 오히려 경찰총을 빼앗아 달아났다. 경찰관 11명에 대한 징계, 3명의 경찰서장 교체, 경찰서장 경고, 직위해제, 수사계장 등이 사표를 제출했다.




여자들에게 다정했던 신창원, 또 신창원의 출소일


지난 8일 방송된 '꼬꼬무'에서는 출연진이 신창원의 탈출을 배경으로 스토리텔링을 꾸몄다. 이날 방송에서는 신 씨가 도주한 뒤 신 씨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됐던 동거녀 전 씨의 사연이 공개됐다.

신창원이 2년 6개월 동안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그를 도와주는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창원이 수감 10일째 모습을 드러낸 곳은 충남 천안의 한 커피숍이었다. 여종업원인 전씨는 신창원을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탈옥수였다고 고백했다. 이후 신창원은 경찰이 감시하는 사이 전씨를 찾아갔다. 신 씨는 동거녀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함께 갈 수는 없다. 만나면 좋은 여자 데려와. 얼굴 좀 봐."

거녀 전씨의 속뜻은 신창원이 자신을 잡길 원했지만 신창원은 결별 선언인 줄 알고 21세 여인을 전씨 앞에 불러 소개했다. 이후 전씨는 한 인터뷰에서 "신씨를 받아들이려 했다"고 고백했다.

검거 21년 만에 올해 53세가 된 신창원은 국가고시 및 대학입시에 합격해 현재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같은 상황에 처한 재소자들에게 심리상담을 해주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꺽정이가 신창원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자 답장이 왔다.

신 씨는 편지에서 이틀 동안 고민했는데 사형제가 부족한 중죄를 저지른 죄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는 "다 자명한 일"이라며 "조용히 사과하고 여생을 여기서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신창원은 1989년 강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석방일이 없다.




신창원에 대한나의 생각




신창원은 내가 초등학교 있을때 부터 tv에 공포에 떨게 만들었었다. 

사건 25시나 경찰철 사람들 등 범죄관련 사건들은 거의 신창원으로 도배됬을때가 있었다.


범죄동기가 참 마음이 아프다. 


옛날에는 지금보다도 더 심했던 무전유죄 유전무죄 사상이 있었을법하다.

무튼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법이니,

노인이 되어서 나오더라도, 좋은 사람이 되어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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